클래식의 대중화를 시도한 죄
클래식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활동을 보여준 테너 박인수 님이 3월 1일 영면에 들었다
클래식의 대중화에 완전성공하여 콘서트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ㄸ기인 테너 김호중을 응원하며
어린 시절 흥얼가리던 향수를 소환해본다.
2021년 소천한
노래하는 사람 김호중이 좋아했던 노래하는
음유시인 이동원과 함께 향수라는 크로스 오버 곡을 불러서
시 또한 국민시가 되게 했던
테너 박인수
가수 이동원
이제 두 분 모두 하늘로 가셨다.
두 분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김호중은 2021년 이동원님의 소천을 많이 슬퍼하며 팬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김호중이 좋아했던 이동원님과
우리나라 최초의 크로스 오버곡을 부른 박인수 님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박인수님은 한 곡을 불러서 우리나라 크로스 오버의 첫 시작을 하였고
김호중은 완벽한 클래식의 대중화 뿐 아니라
트롯의 고품격화도 이루었으니
박인수님의 꿈을 김호중이 이룬 것은 물론
더욱 그 영역과 장르를 확장하여
스스로 장르를 넘나들며 완벽하게 연주하고 있으며
감동까지 더하며 한국 음악사를 새로 서가고 있다.
이름하여 트바로티
1980~90년대 국민가요로 불리던 '향수(鄕愁)'를
가수 고(故) 이동원과 함께 부른 성악가
테너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가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2일 성악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유년 시절부터 신문 배달 등을 하며 고학했다.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뒤
대학교 4학년 때인 1962년 성악가로 데뷔했다. 1
967년에는 국립 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
맨해튼 음악원 등에서 수학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악원 오디션에도 합격해 음악계에서 화제가 됐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라보엠', '토스카', '리골레토' 등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했다.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클래식 음악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소신에 따라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선 바 있다.
대표적으로 그에게 '국민 테너'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히트곡
'향수'가 있다.
'향수'는 시인 정지용이 쓴 동명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노래다.
1989년 음반이 발매된 후 현재까지
130만 장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음악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곡이 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향수 발표 이후 고인은 2000회 이상의 국내외 독창회,
300회 이상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2003년 서울대에서 퇴임한 뒤에는 백석대 석좌교수와
음악대학원장을 맡았으며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한편 유족으로는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 씨가 있다.
장례 예배는 LA 현지에서 3일 오후 6시께 진행되었다.
향수 - 정지용(鄭芝溶)이 지은 시
1927년 3월『조선지광(朝鮮之光)』 65호에 발표되었고, 작자의 제1시집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1935)에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주권과 국토는 물론, 민족과 그 혼의 상징으로서의 국어마저 핍박받고 억압을 당한 일제강점기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의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정지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향수
정지용 / 시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 한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1981년 미국 팝 가수 존 덴버와 함께 ‘퍼햅스 러브’를 발표하자 많은 사람이 “팝송을 테너 목소리로 듣는 것은 처음”이라며 반색했다.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명곡 ‘카루소’도 이탈리아 재즈 음악가 루치오 달라가 곡을 만들어 또 다른 3대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찾아가 “함께 부르자”고 제안해 세상에 나왔다. 성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후 크게 일었다.
▶세계 음악의 최전선에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는 추세다. 유럽 축구 UEFA 챔피언스 리그는 헨델의 대관식 찬가 ‘제사장 사독(Zadok The Priest)’을 공식 응원곡으로 편곡해서 쓴다.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2009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맨유와 FC바로셀로나 결승전 때 관중 앞에서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보첼리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함께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도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명곡으로 꼽힌다.
▶한국에선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향수’가 성악과 다른 장르를 결합하는 ‘크로스 오버’ 물꼬를 텄다. 조선일보가 10여 년 전 ‘현대시 100년 애송시 100편’을 연재했을 때 ‘향수’가 가장 큰 호응을 얻은 것도 노래로 먼저 애송된 힘이 컸다. 성악가 김동규가 노르웨이 혼성 듀엣 ‘시크릿 가든’의 연주곡을 편곡해 부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성악 대중화의 성공 사례다.
▶박인수 교수는 ‘향수’를 불렀다가 ‘성악을 타락시킨 죄’로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도밍고와 파바로티도 처음엔 “대중 가수와 노래하느냐”며 동료에게 손가락질당했다. 17세기 바로크 음악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특유의 역동성과 화려함으로 클래식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지만, 태동기엔 대중에 영합해 르네상스 음악의 조화를 깬 싸구려 취급을 당했다. 바로크라는 용어 자체가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국민 테너’로 오래 사랑받았던 박인수 교수가 1일 영면에 들었다. 박 교수가 떠난 자리엔 그가 생전에 뿌린 성악 대중화의 씨앗이 싹터 열매를 맺고 있다. 팝페라 붐이 인 것도,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오케스트라가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테너 박인수가 대중 사이에 뛰어들어 용기 있게 앞서간 이후다. 최근에는 성악가 김호중·김병민 등이 트로트와 성악을 접목해 대중 앞에 섰다. 덕분에 우리 음악이 더욱 풍성해졌다.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3/02/OHHWYRMXYJBSFF3FO4MMSF5GRA/
관객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노래를 하는 꿈을 안고
그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김호중
김호중 장르의 주인공 김호중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닌 자신의 음악의 장르를 개척해 가는 김호중
클래식에 감동을 입혀 관객 곁으로 다가오고
트롯에 품격을 입혀 계층도 나이도 장벽 없고
장르의 장벽도 깨는 김호중
올라운더 가수 김호중
클래식 콘서트를 앞둔 김호중이 더욱 소중해지는 시간이다
음악적 스펙트럼이 무한대인 김호중
그가 최소한 100살까지 현역 가수로
아름다운 음악으로 많은 이의 기쁨이요 위로요 감동을 가져다주기를 기도한다.
음악의 방향을 찾아 수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연구했던 김호중
김호중 노래
김호중 음악
음악가 김호중 응원한다